첫 번째 단어, ‘셀마’는 김운기 감독의 작품 <원티드>에 나오는 미스터리한 노파의 이름이다. 1987년 한국에서 큰 사상자를 낸 태풍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노파가 상징하는 진짜 의미를 더 빨리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음산한 분위기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셀마의 등장과 함께 평화롭던 마을은 큰 비로 아수라장이 된다. 셀마에 대한 궁금증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어지는 정부의 실속 없는 재난 지원책에 대한 풍자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들춰내며 작품의 핵심을 지난다. 이국적인 느낌의 김운기 감독 특유의 그림체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는 왠지 익숙한 한국의 정치 행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두 번째 단어, ‘단백질’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 <사랑은 단백질>에서 먹는 혹은 먹히는 대상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배고픈 자취생들이 통닭을 시킨다는 너무나 일반적인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닭 사장이 자신의 아들 ‘닭돌이’를 튀겨 오면서 경악할 만치 잔인한 실체를 드러낸다. 우리 모두 모른 척하고 있지만 까발려보면 누구나 누군가를 죽이고, 먹고, 짓밟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노골적인 상상력이 더해졌으니 충격은 배가된다. 작품에서는 그런 상황에 대해 각각 인간 군상이 취하는 입장을 세 명의 자취생을 통해 그리고 있다. 현실의 통렬함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묵인하거나, 죄책감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거나. 우리 모습도 그들 중 하나를 닮아있다.
세 번째 단어, ‘커피’는 장형윤 감독의 작품 <무림일검의 사생활>의 주인공 검객 ‘진영영’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음료다. 전생에 강적과의 대결로 목숨을 잃은 진영영은 소원대로 강철로 환생하지만 그것이 ‘커피 자판기’일 줄이야. 수시로 몸이 자판기로 바뀌는 불편한 상황에도 사랑은 찾아오고, 그야말로 가슴에서 커피를 뽑아낸다는 텍스트 그대로 말랑말랑한 멜로액션을 보여준다. 앞의 두 작품처럼 해학적으로, 혹은 통렬하게 현실을 관통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형윤 표 어설픈 그림으로 그려낸 익숙한 서울 풍경은 우리가 사는 곳을 색다르게 투영한다.
<셀마의 단백질 커피>는 세 가지 다른 그림체, 다른 성격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는 대상은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현실이기에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실제로 가시화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까지 그려낸 점은 애니메이션만의 묘미를 보여준다. 우리가 과연 어느 장르에서 괴기스런 노파로 분한 태풍을 마주치고, 아들을 튀겨온 닭 사장의 소름끼치는 통곡을 들으며, 커피 자판기가 사랑을 나누는 홍대 앞 골목을 목격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현실과 반대쪽에 위치하는 허무맹랑한 덕후들의 세상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더욱 추천한다. 이 작품 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살 부대끼며 상승하는 온도를 체감해보자. (한국 Ani DB 추천 애니)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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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의 단백질 커피> DVD 발매 기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