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스튜디오는 많은 명작을 남겼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호라는 일본 영화계의 두 거장의 작품들이 지브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최고의 명작을 꼽으라면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싶다.

<귀를 기울이면>은 히이라기 아오이의 소녀만화를 원작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콘티를 담당했다. 그리고 지브리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혔던 콘도요시후미의 감독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작품이다.(콘도 요시후미는 1998년 지병으로 숨졌다.)

<소년 소녀의 수줍은 사랑이야기>인 원작에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진보적인 세계관이 더해진 후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실사영화보다 더욱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완성된 명작이다.

사실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따뜻한 세계를 그릴 줄 아는 상상력 풍부한 감독 정도로 알고 있지만 하야오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단호하고 파격적일 정도로 진보적이다. 아마 한국에서 작업을 했더라면 안기부 좀 들락날락 했을 법한 세계관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야오는 수줍은 순정만화에다가 이제 뭔가 시작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전달 하고 싶은 메시지를 넣었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자신의 가치를 찾는 방법,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고통, 남의 시선을 이겨가는 법 등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항상 부딪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귀를 기울이면>의 세계관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계이다. 자신의 가치를 시험하고자 안정적인 일상에서 일탈하는 어린 딸에게 잘 피지 않는 담배를 피며 <좋아 그럼 네 생각대로 한번 해보렴..하지만 남들과 다른 방식의 삶이란 그만큼 어려운 거란다>라고 딸을 믿어주는 아버지가 존재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들고 온 어린 소녀에게 <그래.. 거칠고 솔직하고 미완성이고..하지만 열심히 잘했다. 정말 멋지구나..서두르지 않아도 된단다.> 라고 이야기 하는 노인, 그리고 스스로의 것들을 완성해 가는 어린 젊은이들이 <좋아해> 라고 말하는 세계이다.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기 위해 역경을 이겨내는 독기 부릅뜬 젊은이들이 아니라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모습에 박수쳐주는 어른들이 있는 세계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들어냈다.

또 콘도 요시후미는 그런 세계관에 현실성을 더한다. 편의점에서 필요도 없는 비닐봉투를 얻어온 딸을 나무라는 엄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컨트리 로드의 합주 장면에서는 바이올린을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들여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은 이 감독이 무엇을 연출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진보적 사회의 진보적 감동, 그것이 <귀를 기울이면>이 전해주는 감동이다.



어쩌다 보니 지브리 관련 포스트가 연속으로..
여튼 좀 된거긴 한데 작업하면서 들을 안 질리는 음악 찾다가 다시 꺼내든 지브리 25주년 기념 히사이시 조 무도관 공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영화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만들었음.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중간 중간 울컥 감동이 밀려올것임. 
 
뉴키즈 온 더 블럭 듣던 아이들이 너 뭐 들어? 라고 물었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듣는다고 말하면 무슨 변태 취급받던 중학교 시절, 어둠의 경로로 구한 라퓨타의 OST 복사본 카세트를 늘어날 때 까지 들으며 잠들었었던 나에게는 엄청난 감동이...(그 후 20여년 후 히사이시 조는 무도관에서 공연을 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 됬고, 우리나라 대중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은 그때 보다 더 안좋아졌다. ㅎㅎ)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엄청난 관객. 노인부터 아이까지 같은 추억에 젖어 음악을 듣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직접 저 자리에서 듣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그런 공연.
공연 마지막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깜짝 등장엔 찡한 느낌.
25년이나 같이 작업한 동료가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안됨.
우리나라엔 공연 실황 정품으로 안나오나...
맛배기로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붉은 돼지>의 OST <지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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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일요일 아침이면 일어나서 제일 처음 하는 것이 TV를 켜 EBS를 보는 것이다.
매주 10시부터 EBS에서는 엄마 찾아 삼만리를 하고 있다.

아득한 바다 저멀리~ 처량하기 그지 없는 이 주제가를 들을때 마다 저렇게 우울한 작품이 티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원작 소설이 있긴 했지만 원작 만화가 없는.. 한마디로 캐릭터 디지인부터 배경 설정, 시나리오 까지 전부 창작한 작품.

 엄마 찾아 삼만리는 지금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존재하게 한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이다.
초기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은 정말 주옥같다.

빨강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미야자키 하야오도 데뷔전에 이들 작품에서 원화와 레이아웃 연출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작업하며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림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차이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그림체를 가지고 거의 40여년을 작업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지브리의 저력을 만든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
40여년 동안 바뀌지 않은건 그림체 만이 아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지브리 계열의 액팅은 다이나믹하고 시원 시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테일 하다.
 그리고 캐릭터의 감정 연출에서 역시 최고의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애니메이션 제작의 경향이 CG위주나 3D 블럭버스터 중심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2D 애니메이션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끼다가도 역시 고전 명작을 보면서 느낀다. 
 
명품은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원문출처: 허지웅의 블러그

한국의 스필버그,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 이제는 한국의 닌텐도를 찾는다. 만약, 스필버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와 닌텐도가 한국에서 시작했다면 그 모든 성공신화가 가능했을까. 이 같은 욕망이 한국 문화산업을 망쳐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꾸린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2월 4일에는 지하벙커를 벗어나 밖으로 나섰다. 과천 정부청사를 방문해 ‘현장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가진 것이다. 장소는 지식경제부였다. 수출 침체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불안심리를 막겠다는 목적이었다. 이 날 대통령의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가 잘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크리에이티브한 제품은 소니, 닌텐도가 앞서가는 게 사실이다.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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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다!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코리아 2월호 

본문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하에 쓴 fake documentary 입니다. 물론 허구이지만 애니메이션의 한국적 현실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반영했습니다.



                                                                                            < 일러스트: 하명석>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이다.


해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보고 그들의 신화를 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이뤄보자는 결심을 했다.


가만 가만... 그렇다면 일단은 자신의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 밑에서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한국의 선배 애니메이션 감독 밑으로 들어가자!>

하지만 이제 애니메이션을 시작하는 하야오가 알만한 한국의 애니메이션 감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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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기술자

Text 2008/09/05 00:48

 

한명의 대가리가 99명을 이끈다는 BK21의 망령은 대한민국의 산업을 망쳐놓았다.


영웅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정서는 장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후반에 돈 되는 산업처럼 보였던 애니메이션 산업은 국가의 큰 관심이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돈 될 것처럼 보였던 산업을 키우기 위해 국가가 시작한 것은 <99%를 이끌 수 있는 유능한 1%의 크리에이터를 발굴하라!>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대학이 생기고 그것으로 모자라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가 생겼다. 그곳에서는 크리에이터가 되라! 대가리가 되라! 아이디어로 승부하라! 온갖 감언이설로 교육시켜왔다.


한국의 단편애니메이션이 세계 영화제를 휩쓸기 시작했다.

이야~ 드디어 그렇게 쏟아 부었던 돈이 제 값을 하기 시작하나 보다!

그렇게 쉬이 기뻐했다.


그리고 10년이다.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은 그 자리이다. 아니 문화 산업적으로 보면 20년전 보다 후퇴했다.

문화산업적으로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술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왤까? 한해에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크리에이터가 몇 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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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한국에서도 성공했을까?

국내 제작현실과 스타감독 탄생의 꿈 
_연상호  뉴스 한국 2007년 3월

세계적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적으로 보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 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 이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일본 전체 영화계에서도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그의 스승이자 동료인 *‘다카하타 이사오’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63년 ‘도에이동화’에서 *동화맨으로 애니메이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작품을 거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플란다스의 개(1975, 즈이요 영상)> <엄마 찾아 삼천리(1976, 닙폰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1976, 닙폰 애니메이션)>의 *원화맨을 거쳐 <미래소년 코난(1978, 닙폰 애니메이션)>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 데뷔를 했다.
이후 극장용 장편 <루팡 3세-카리오스트로 성(1979, 도쿄무비 신사)>으로 극장용 장편 감독 데뷔를 했고, 이후 지금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현 지브리 스튜디오 프로듀서)를 만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톱 크래프트)>를 만들면서 흥행과 작품성을 겸비한 전무후무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건 오랫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는 하야오 만의 그림체만 보더라도 ‘다카하타 이사오’의 초기 작품인 명작동화 시리즈(프란다스의 개, 빨간머리 앤 등)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분명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상업 애니메이션계에서 원화 작화인과 연출자로 활동하면서 쌓은 상업애니메이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창작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주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제작현실과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식 작품 세계의 첫 신호탄을 날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기까지를 돌아보자면, 일단 위에서도 말했듯이 하야오는 ‘도에이동화’에 동화맨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의 *OEM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야오가 원화맨 생활을 시작한 시기부터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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